이성계가 명나라에 여말선초의 상황에 대해 낱낱이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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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명나라에 여말선초의 상황에 대해 낱낱이 고하다.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2월 19일 기축 1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표전 문제 등 황제가 힐문한 10가지 조항에 대해 해명하는 주문국역원문.원본 보기 조정(朝廷)015) 의 사신 김인보(金仁甫)·장부개(張夫介)가 돌아가니, 임금이 주본(奏本)016) 1통(通)을 지어서 부쳐 올리고,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에 이르러 전송하였다. 그 주문(奏文)은 이러하였다. "홍무(洪武) 26년(1393) 12월 초8일에 흠차 내사(欽差內史) 김인보(金仁甫) 등이 이르러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의 자문(咨文)을 받아, 삼가 성지(聖旨)를 받자왔는데, 이르기를, ‘어찌해서 고려의 이성계(李成桂)가 스스로 변방의 흔단(釁端)을 일으켜 해마다 그치지 않는가? 그 계량(計量)은, 창해(滄海) 강토(疆土)를 빙 둘러 있고 겹친 산[重山]을 짊어져서 험지(險地)를 삼은 것은 믿는 데 불과하니, 자주 흉완(兇頑)한 짓을 함부로 행하여, 우리 조정에서 군사 징발함을 한(漢)나라·당(唐)나라와 같이 여기고 있다. 또한 한(漢)나라·당(唐)나라 장수들은 기사(騎射)에는 장점이 있고 주즙(舟楫)017) 에는 단점이 있는 까닭으로, 바다를 건너는 데 고생을 하고 군사의 행진이 뜻대로 되지 않았었다. 짐(朕)은 중국을 평정함으로부터 호로(胡虜)를 물리치고 하해(河海)와 육지(陸地)를 통틀어 정벌했으니, 수군(水軍)의 여러 장수들이 어찌 한(漢)나라·당(唐)나라의 한 일에 비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반드시 군사가 삼한(三韓)에 이르지 않더라도 전후(前後)에 유인(誘引)한 여진(女眞)의 대소(大小) 가족들을 돌려보내고, 유인된 여진(女眞)의 변방을 수비한 천호를 보내어 오고, 이후에는 간사한 꾀를 만들어 변방의 흔단(釁端)을 일으키지 말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한다면, 바야흐로 동이(東夷)의 군주가 되고 후사(後嗣)도 또한 번성하게 될 것이다.’ 하였는데, 삼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소...

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6일 癸丑 2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이조 참판 김우옹이 시무를 논한 상차

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6일 癸丑 2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이조 참판 김우옹이 시무를 논한 상차국역원문.원본 보기 이조 참판 김우옹(金宇顒)이 상차하기를, "봄철이 점점 박두해 오는데 적의 정세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께서 걱정하시고 제공(諸公)이 애쓰고 있으므로 묘당(廟堂)의 계책은 진실로 십분 세밀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신은 오활한 선비로 외람되이 대부의 반열에 있으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목격하고 마음 속으로 울분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 마디 말이라도 내어 보익(輔益)하지 못하였으니, 나라를 등진 죄가 실로 큽니다. 삼가 묘당의 계책을 보건대, 포루(砲樓)를 만들려 하고 한강 가에 진영을 설치하고자 하니, 그 의도가 진실로 좋습니다. 그러나 신은 들으니 ‘경사(京師)를 견고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그 형세를 장엄하게 하여, 안으로는 번원(藩垣)의 견고함을 두고 밖으로는 외침을 막아내는 계책을 세워 그 강대한 군사와 견고한 진영으로 삼엄하게 버티게 하기 때문에 나라는 반석같이 안녕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외의 형세가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고, 변방의 일은 허술하여 하나도 번병(藩屛)의 가리개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금위(禁衛)가 미약하여 포수(砲手)와 살수(殺手)는 1천 명도 차지 못합니다. 형세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나라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건대, 대업을 회복하는 데는 모름지기 사심(私心)을 극복하고 백성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우선을 삼고, 정사를 닦고 어진이를 임용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우매한 생각으로 미치는 바를 하나하나 조목별로 나열하여 만에 하나라도 채택하실 자료를 갖춥니다. 1.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은 각각 처자를 거느리고 산성(山城)에 입보(入保)하도록 교유하셨으니, 이 한 가지는 오늘날의 급선무인 것입니다. 명지(明旨)가 이미 내려졌으니, 서둘러 준행하였으면 거의 일이 성취되었을 것인데, 비변사가 즉시 거행하지 않으니, 신은 몹시...

훈련 도감에서 왜인 여여문에게서 왜인의 진법을(일어 번역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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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7일 甲寅 1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훈련 도감에서 왜인 여여문에게서 왜인의 진법을 전수받을 살수아동의 충원을 청하다 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7일 甲寅 1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훈련 도감에서 왜인 여여문에게서 왜인의 진법을 전수받을 살수아동의 충원을 청하다 //  [宣祖実録 72巻、宣祖29年2月17日 甲寅 第1記事 1596年 明 万暦(萬曆)24年 訓練都 [宣祖実録 72巻、宣祖29年2月17日 甲寅 第1記事 1596年 明 万暦(萬曆)24年 訓練都監(くんれんとかん)が、倭人呂汝文から倭人の陣法を伝授されるための殺手児童の補充を請う] 訓練都監が申し上げました。 「先日、都監が倭人の陣法を学ぼうとして、降倭の名である呂汝文に尋ねたところ、その陣法は、旗を持つ者が前に立ち、鳥銃を持つ者がその次に、槍剣を持つ者がさらにその次に立って、整然と列をなし、左右には巧みに奇兵を配置するとのことです。戦いに臨む際、旗を持つ者は列を左右に展開し、銃を持つ者は銃を撃ち、槍剣を持つ者は勢いに乗じて突進しながら、左右に列を展開します。旗を持つ兵士はまた、両側を囲んで進み、左右の伏兵とともに敵の後方を包囲します。このようにして激戦しながら展開する際には、さらに多くの伏兵を左右に配置し、鳥銃と槍剣でそれぞれ一隊を成し、森の中に散開して伏せるのは、まるで鳥や獣が隠れるようです。そして挑戦する際には、必ず少数の兵で誘い出し、敵が伏兵の場所に落ちるのを待って、次々と立ち上がって攻撃します。彼らが合散伏兵の形を行う様子を見ると、非常に巧妙です。その技術をすべて伝えたいのですが、殺手児童の数が非常に少ないです。どうか五部にもっと選抜させてください。」 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7일 甲寅 1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훈련 도감에서 왜인 여여문에게서 왜인의 진법을 전수받을 살수아동의 충원을 청하다국역원문.원본 보기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전일에 도감이 왜인의 진법(陣法)을 배우고자 하여 여여문(呂汝文) 【투항한 왜인의 이름. 】 에게 물으니, 그 진법이 깃대를 진 자는 앞에 서고 조총(...

이순신에게 뒤진거같은 도요토미 히데카츠

 선조실록 32권, 선조 25년 11월 11일 丁卯 6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비변사가 중국군 장수와 주고 받은 왜적의 정세 및 조선의 형세에 대한 문답국역원문.원본 보기 중국에서 군사를 내어 구원하려고 왜의 정세와 우리 나라의 형세를 조목으로 물었다. 비변사가 조목에 따라 진술하였는데, 그 문답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1. 문:왜노의 분명한 수효는 얼마이며, 어떤 정세이고, 어디에 잠복하고 있는가? 답:왜선(倭船)이 처음 부산(釜山)에 도착한 것은 4백여 척이었으며, 또 뒤따라 도착한 것이 7∼8백 척이다. 그들의 개미처럼 흩어지고 멧돼지처럼 내달아 7도(道)를 나누어 점거하고 있다. 1. 문:왜선은 얼마나 되며, 현재 어느 하구(河口)에 정박하고 있는가? 평양에는 현재 얼마나 있으며 얼마나 파괴되었는가? 답:왜선은 길을 나누어 전라도를 침범했는데 본도의 수사(水使) 이순신(李舜臣) 등이 전후 일곱 차례 싸워서 4백여 척을 불태워 격파하였고, 목을 벤 자 이외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부지기수이다. 현재 해항(海港)에 정박하고 있는 것은 4∼5백 척이며, 우리 나라의 어선을 약탈한 평양에 남아 있는 적선은 겨우 수십 척이다. 왜인들의 수비가 매우 엄하여 우리 군사가 밤을 타 몰래 가서 몇 척을 파괴했다. 1. 문:팔도의 인심은 어떠하며, 구주(舊主)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의사(義士)들이 호응하여 나라를 회복하기를 도모하는가? 답:본국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임금과 백성들이 오랫동안 황제의 은혜를 입어 사람들이 전쟁을 모르고 지낸 지 2백여 년이 되었다. 갑자기 적의 화란을 만나 군정(軍情)이 놀라 흩어져 풍문만 듣고서 붕궤되었다. 근일에는 각도의 의사들이 서로 모여 군대를 이루어 민가에는 남아 있는 장정(壯丁)이 없다. 선비들이 분발하여 적을 죽이기로 뜻을 품어 모두 적과 싸우다 죽을 것을 생각하고 있다. 1. 문:왕경(王京)의 왜노는 얼마나 되며, 평양의 왜노는 처음 얼마였으며 지금 얼마나 더 늘었는가? 답:경성에 남아 있는...

노량해전 전후 각 왜성들과 명나라의 대치 상황

 선조실록 107권, 선조 31년 12월 21일 임신 3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네 제독이 각 아문에 보낸 첩문국역원문.원본 보기 네 제독이 각 아문에 첩문을 당보(塘報)하였다. 진 도독(陳都督)이 【진인(陳璘). 】 아문에 당보(塘報)한 첩문은 다음과 같다. "본부가 여러 장수들을 통솔하고 노량(露梁)에 당도하여 이순신(李舜臣)이 포위당한 것을 보고 본부가 직접 병정을 거느리고 수백 명의 적을 쳐죽이자 적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승세를 몰아 20여 리를 추격하니 적들이 불에 타 죽고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다 건져내지는 못했지만 생포하거나 참살한 수가 도합 3백 20명이나 되었다. 천총 진구경(陳九經)이 【진인(陳璘)의 아들이다. 】 왜장 1명을 생포했는데 석만자(石曼子)라고 하였다. 부총병 등자룡(鄧子龍)과 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하였다." 유 총병(劉總兵)이 【유정(劉綎). 】 아문에 보고한 첩문은 다음과 같다. "본부가 4로의 관병을 거느리고 한밤중에 곧바로 소서행장의 성 밑에 이르러 삼면에서 공격하기를 인시(寅時)까지 하였다. 풀에 흙을 싸서 해자를 메우고 올라가 안팎에서 협공하자, 왜노들은 우리 군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이 여겼다. 그러나 끝없이 저항하여 해변까지 밀고 갔는데 선박이 없어 추격하지 못하였다. 1백 60명의 수급을 베었고 의복과 갑옷 등의 물품도 노획하였다." 동 제독(董提督)이 【일원(一元). 】 아문에 보고한 첩문은 다음과 같다. "심안도(沈安道)가 새로 세운 채책은 갑자기 공격하여 격파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채책 안에 석만자(石曼子) 밑에서 일을 하는 곽국안(郭國安)이란 자가 성심으로 우리에게 내응해 주었다. 경리 도원(經理都院) 만야(萬爺)가 보낸 유문(諭文)을 받고 본영의 참모관 사세용(史世用)으로 하여금 그 글을 가지고 석만자에게 가서 효유하자, 석만자는 즉시 소서행장(小西行長)·풍신정성(豊臣正成)·충장(忠長)·현소(玄蘇)·조신(調信) 등을 불러 말하기를 ‘새...

노량해전 때 경상남도 사람들이 친왜 부역한 것에 대한 사료

노량해전 때 경상남도 사람들이 친왜 부역한 것에 대한 사료  ============ 선조실록 107권, 선조 31년 12월 22일 계유 1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경상우도 수사 이순신이 적에 빌붙은 인민들을 효수하였음을 아뢰다국역원문.원본 보기 경상우도 수사 이순신(李純信)이 아뢰었다. "남해(南海) 인민들이 적에게 빌붙어 서로 통하면서 향도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도장(都將)이라 칭하는 정육동(鄭育同)과 권농(勸農)이라 일컫는 정기생(鄭起生)은 소서행장이 회군했을 때 인민들을 거느리고 주육(酒肉)으로 맞이하여 절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승리하고 회군하였다는 말까지 하면서 칭하한 정상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에 우선 이들을 효수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극심했던 자들이 필시 많이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백성들을 불러 모아 안무해야 할 때이므로 진정시키는 일에 힘써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야 할 것입니다. 노량 싸움에서 진 도독(陳都督)이 우리 나라 판옥선(板屋船) 위에서 역전하는 모습을 신이 목격하였지만 풍신정성(豊臣正成)을 생포한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도독이 신을 불러, 자신이 힘껏 싸운 정상과 적추를 생포한 공을 군문에 보고하라고 하기에 신이 부득이 따랐습니다." 【태백산사고본】 67책 10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48면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 ○癸酉/慶尙右道水使李純信啓曰: "南海人民, 附賊交通, 以爲嚮導。 其中鄭育同, 稱爲都將, 鄭起生稱爲勸農, 行長回兵之時, 領率人民, 以酒肉迎拜。 至以勝捷回軍, 稱賀之狀, 人無不言之, 故爲先梟示。 此外尤甚者, 必多有之, 而今當召集安撫之日, 務爲鎭定, 使之自安。 露梁之戰, 陳都督乘我國板屋船, 力戰之狀, 臣所目見, 得擒正成之事, 則未得明知。 都督招臣, 以力戰擒酋之功, 使之稟報軍門, 臣不得已從之。" 【태백산사고본】 67책 10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48면 【분류】...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말한 노량해전_조선왕조 선조실록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말한 노량해전_조선왕조 선조실록 // 선조실록 109권, 선조 32년 2월 7일 정사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진 도독의 관사에 거둥하여 접견례를 행하다국역원문.원본 보기 상이 진 도독의 【진인(陳璘). 】 관사에 거둥하여 접견례를 행하였다. 【노량(露梁)의 전투에서 진격해오던 적이 물러가 마침내 전승하였으니 그 성공은 천운이었다. 】 진인이 말하기를, "부산성(釜山城)은 성곽이 불완전하여 적을 막을 수 없으나 만약 20∼30만 냥의 은자(銀子)를 가지고 무기를 보완하고 용사를 모집한다면 적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와 순풍을 만나면 하루에 오갈 수 있어 적이 오는 길목이니 굳게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이 나라를 이처럼 깊이 생각하시니 감격스럽습니다." 하고, 상이 윤돈(尹暾)에게 이르기를, "부득이 부산성을 개축한다면 왜적의 옛 보루(堡壘)를 철거하고 쌓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그래야 합니다." 하였다. 도독이 말하기를, "대마도는 토질이 척박하니 반드시 이 나라의 미곡을 필요로 할 것이고 게다가 고기를 잡기 위해 오가다가 평상시에 몰래 노략질할 우려가 없지 않으니 반드시 중국의 제도처럼 돌로 몇 층의 지대(地臺)를 단단하게 쌓고 그 위에 벽돌을 매끈하게 쌓아올려 침입해 오더라도 붙잡고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경(王京)은 바로 근본이 되는 지역인데 도성이 지나치게 크고 견고하지 않으니 반드시 군문(軍門)과 강정(講定)하여 개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우리 나라의 근본을 위하시는 걱정이 이처럼 지극하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도성이 너무 크다는 것은 과인도 이미 알고 있으나 다만 형세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개축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좋은 방법을 지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