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6일 癸丑 2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이조 참판 김우옹이 시무를 논한 상차

선조실록 72권, 선조 29년 2월 16일 癸丑 2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이조 참판 김우옹이 시무를 논한 상차국역원문.원본 보기

이조 참판 김우옹(金宇顒)이 상차하기를,


"봄철이 점점 박두해 오는데 적의 정세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께서 걱정하시고 제공(諸公)이 애쓰고 있으므로 묘당(廟堂)의 계책은 진실로 십분 세밀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신은 오활한 선비로 외람되이 대부의 반열에 있으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목격하고 마음 속으로 울분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 마디 말이라도 내어 보익(輔益)하지 못하였으니, 나라를 등진 죄가 실로 큽니다. 삼가 묘당의 계책을 보건대, 포루(砲樓)를 만들려 하고 한강 가에 진영을 설치하고자 하니, 그 의도가 진실로 좋습니다. 그러나 신은 들으니 ‘경사(京師)를 견고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그 형세를 장엄하게 하여, 안으로는 번원(藩垣)의 견고함을 두고 밖으로는 외침을 막아내는 계책을 세워 그 강대한 군사와 견고한 진영으로 삼엄하게 버티게 하기 때문에 나라는 반석같이 안녕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외의 형세가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고, 변방의 일은 허술하여 하나도 번병(藩屛)의 가리개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금위(禁衛)가 미약하여 포수(砲手)와 살수(殺手)는 1천 명도 차지 못합니다. 형세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나라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생각건대, 대업을 회복하는 데는 모름지기 사심(私心)을 극복하고 백성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우선을 삼고, 정사를 닦고 어진이를 임용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우매한 생각으로 미치는 바를 하나하나 조목별로 나열하여 만에 하나라도 채택하실 자료를 갖춥니다.


1.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은 각각 처자를 거느리고 산성(山城)에 입보(入保)하도록 교유하셨으니, 이 한 가지는 오늘날의 급선무인 것입니다. 명지(明旨)가 이미 내려졌으니, 서둘러 준행하였으면 거의 일이 성취되었을 것인데, 비변사가 즉시 거행하지 않으니, 신은 몹시 의혹됩니다. 청컨대 빨리 명지를 내려 제도(諸道)를 신칙하소서.


1. 감사와 수령은 민심을 얻는 데 힘써 그 성심을 미루어 백성들의 마음 속에 두어서 근실히 깨우쳐 주고 그 이해를 밝게 제시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그 노유(老幼)를 이끌고 양식을 싸 가지고 가서 산성에 들어가 보전하며 힘을 합해 수비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의도로 개유하면 누구인들 믿지 않겠습니까.


1. 직로(直路)의 요해처와 관방(關防)의 중요한 곳은 문무의 재략이 있는 자를 극선하여 수령을 삼아, 파수를 엄히 설치하여 허술하게 하지 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 감사와 수령으로서 상의 하교를 받들지 않고 먼저 도망갈 궁리만 하여 민심을 동요시키며, 장령(將令)을 따르지 않고 산채(山寨)에 들어가지 않는 자는 모두 목을 쳐서 효시하여 민심을 경계시키소서. 임진년 변란에 곳곳이 분궤한 것이 비록 민심이 흩어진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긴 하나 역시 군율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그대로 답습하여 스스로 패망을 자초할 수는 없는 것이니, 반드시 엄히 효유하여 재삼 경계한 후 하나하나 율에 의해 시행하소서.


1. 모든 장관(將官)과 여러 고을 수령을 나누어 위장(衛將)을 삼고 각각 자기의 성채를 지키면서 사세를 연락하여 서로 구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적이 모처로 향하면 모 위장(某衛將)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고, 적이 모채(某寨)를 포위하면 모 위장이 군사를 연합해서 구원하는데, 혹시라도 영을 어길 경우에는 즉시 참하여 조리돌리게 하소서. 이상의 두어 가지 조항을 도체찰사(都體察使)에게 하서(下書)하여 빨리 시행하소서. 들으니 체찰사가 원수(元帥)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타당한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오늘의 걱정거리는 장수가 많은데 있습니다. 장수가 많으면 명령이 나오는 곳이 많아 제장과 열읍이 일정하게 따를 곳이 없게 되니, 이것이 끝내 패망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주역(周易)》에 ‘장자가 군사를 거느릴 것이니, 제자들이 모두 주장하면 흉하다. [長子帥師弟子輿尸凶]’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미 도체찰사가 있고 또 부사(副使)가 있는데, 어찌 다시 원수를 보내 모두 주장케 함으로써 흉하다는 것을 범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별도로 대장을 두어 융무(戎務)를 총괄하게 한다면 곽재우(郭再祐)·박진(朴晉)·배설(裵楔) 같은 사람이 적임자일 것입니다.


1. 민심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봉(自奉)을 검소하게 해야 합니다. 성상께서는 용만(龍灣)037) 에 계시던 때를 잊지 말고, 군신들은 발섭하던 그 때를 잊지 말아서, 연사(燕私)의 공봉(供奉)을 거두어 날랜 장사를 모집하고, 후궁의 비용을 덜어 강한 군사를 양성하면 인심이 반드시 감동할 것이며 군세(軍勢)도 자연 씩씩해질 것입니다.


1. 기사(騎射)는 우리 나라의 장기(長技)인데, 의용(義勇)한 아동은 여러 번 표창을 받았으나 활 잘 쏘는 무사는 은전(恩典)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특별히 불러 온정을 베풀어서 그 장기를 권장하심이 마땅하겠습니다. 당 숙종(唐肅宗)의 덕업은 칭할 만한 것은 없으나, 오직 전사(戰士)를 무양(撫養)하였기 때문에 장양제(張良娣)038) 가 몸을 푼 지 수일 만에 일어나 전사들의 옷을 기우면서 말하기를 ‘이 어찌 첩이 자신을 봉양할 때이겠는가.’고 하였으니, 참으로 숙종의 마음씀이 근실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능히 극복(克復)039) 을 이룬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습니까.


1. 원옥(冤獄)이 인심을 거스르고 화기를 상하게 한 것이 기축년보다 더 심한 적이 없습니다. 억울하게 걸려든 사람들을 빨리 대신으로 하여금 상의하여 조목별로 아뢰게 하여 그 원한을 씻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민심이 감동하여 기쁘게 여길 것이며 천심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1. 김성일(金誠一)은 일본에 봉사(奉使)하면서 그 높은 절의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교활한 현소(玄蘇)라 할지라도 오히려 감히 그의 절의를 숭상하여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영남(嶺南)에 수임(受任)하여서는 의병을 규합하며 강개한 마음으로 애쓰다가 군중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영남 사람들이 이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당시 정인홍(鄭仁弘)·김면(金沔)·곽재우(郭再祐)의 무리가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고 큰 공로를 세운 것은 모두가 성일(誠一)이 주도하여 성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추증(追贈)의 명이 면(沔)에게만 미치고 성일은 여기에서 빠졌으니, 실로 성세(聖世)의 흠전(欠典)입니다. 성일이 일본에 사신가서 형세를 세밀히 살피지 못한 것이 단점이 되기는 하겠으나, 이는 실로 무심한 데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깊이 책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죄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조그만 과실로 대절(大節)을 가리울 수 있겠습니까.


1. 정인홍과 곽재우는 충의가 현저하고 훈공 또한 높은 사람으로 인홍은 방백(方伯)이 될 만하고 재우 또한 장재(將才)입니다. 재우는 전려(田廬)에 돌아가 살면서 체찰(體察)의 부름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이는 신하로서 나라의 위급함을 급하게 여기는 의리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남들이 그르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시 조정의 임용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묘당(廟堂)에 문의하여 하루바삐 크게 등용하도록 하소서. 재우 같은 자를 편전에 불러들여 친히 옥음(玉音)을 주시고 충의로 권면하여 방면(方面)의 임무를 맡기면 그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백성들을 모아 보호하고 재산을 증식시켜 주며 가르치는 것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지금 병화(兵火)를 겪은 나머지 생령(生靈)이 거의 다하였으니, 마땅히 백성을 구휼하는 일로 첫째를 삼을 것이요, 군사를 다스리고 험조를 설치하는 일이 그 다음입니다. 옛날에 위(衛)나라가 적(狄)에게 멸망당하여 남은 백성이 수천에도 차지못하였는데, 문공(文公)이 거친 베로 지은 옷을 입고 거친 비단으로 만든 갓을 쓰고서 재용(材用)을 배식하는 데 힘쓰고 농사를 가르쳤으며, 상화(商貨)를 유통하고 공업을 권장하여 원년(元年)에 혁거(革車) 30대였던 것이 말년에는 3백 대가 되었으며, 그 마음가짐이 성실하여 마침내 내빈(騋牝)040) 이 3천에 이르렀습니다. 대저 위나라는 조그마한 나라로 잔파(殘破)한 나머지를 가지고도 회복을 이처럼 쉽게 하였는데, 하물며 우리 나라는 지경이 수천 리나 되고 백성과 물력이 위나라에 비해 10배나 되는 데이겠습니까.


1. 성지(聖志)가 이미 세워져서 개연히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자임(自任)하신다면, 반드시 어진 재상을 얻어 그에게 정사를 위임하고 성취를 기대해야 할 것이며, 청납(聽納)에 근실하여 정사를 바루고 업적을 일으키소서. 날마다 아침 일찍 조회를 마치시고 편전(便殿)에 옮겨 앉아 승지(承旨)로 하여금 출입하면서 일을 아뢰게 하며 내관으로 성지를 전하게 하지 마소서. 평소 한가롭게 계실 때에는 경연관(經筵官)과 양사(兩司)를 불러 경의(經義)를 논란하며, 자주 대신을 인대(引對)하여 모든 정사를 의논해 결정하면서 군신이 서로 경계하여 함께 어려운 일을 제도하소서. 아침에는 금령(禁令)을 바루고 낮에는 국정(國政)을 고찰하며, 저녁에는 전형(典刑)을 살피고 밤에는 백공(百工)을 깨우치소서. 날마다 어진 사대부를 접촉하면서 마음을 치란(治亂)의 기미에 두고 하루라도 혹시 궁중에 안일하게 계시는 일이 없으면 하늘이 반드시 도울 것이어서 나라의 위세를 떨칠 수 있을 것입니다.


1. 치란(治亂)은 백관(百官)들에게 달린 것이니, 임관(任官)의 도를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의 명군(明君)들은 대부분 공경(公卿)과 근신(近臣)으로 하여금 현재(賢才)를 천거하게 하고 혹은 스스로 그 동료를 천거하게 하기도 하여 일찍이 전부(銓部)에게만 위임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는 대개 천하의 인재는 무궁한 데 반해 전관(銓官)의 이목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천거하는 법을 신명하여 재능에 따라 임용하여 각각 그 기국에 맞게 하면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 자격에 구애되게 하고 인재를 선택함에 있어서 과목(科目)으로 제한하는데, 이는 진실로 말세의 그릇된 제도입니다. 더구나 쇠란한 세상이어서 인재가 한정되어 있는데 과목과 자격으로 구애하니, 거듭 탄식할 일입니다. 우매한 신의 생각에는 쓸 만한 강명한 선비를 택하여, 혹은 포의(布衣)로 경연(經筵)에 입시시키고 혹은 춘궁(春宮)의 공부를 권장하게 하면, 충분히 성덕(聖德)에 보익이 되고 관청(觀聽)을 용동시켜 새로 다스리는 정사에 도움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은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이 지극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소(疏)를 올린 뜻이 가상하다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우옹(宇顒)은 영남 사람이다. 차(箚)중에 보인 전체 20여 조의 말이 모두 난을 제거하는 일인데, 이를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태백산사고본】 44책 72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648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사법-재판(裁判)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 구휼(救恤)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註 037]용만(龍灣) : 의주(義州)를 가리킴.

[註 038]장양제(張良娣) : 당 숙종(唐肅宗)의 비(妃) 장황후(張皇后). 양제(良娣)는 여관명(女官名)으로 태자의 첩을 일컫는 말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당 숙종이 당시 태자로서 양제와 함께 진중에 종사하였는데, 이때 양제는 전사(戰士)들의 옷을 깁는 등의 일을 몸소 도왔다. 《당서(唐書)》 후비전(后妃傳).

[註 039]극복(克復) : 극기 복례(克己復禮)임.

[註 040]내빈(騋牝) : 내마(騋馬)와 빈바(牝馬). 내마는 7척이 되는 말. 빈마는 암말. 《시경(詩經)》에 ‘내빈삼천(騋牝三千)’이란 말이 보인다.


○吏曹參判金宇顒上箚曰:


春汛漸迫, 賊情叵測。 聖上憂勞, 群公焦思, 廟堂籌策, 固已十分詳密, 而臣以迂儒, 濫廁大夫之列, 目擊時艱, 心懷憂憤, 而不能出一語, 以圖裨益, 則負國之罪大矣。 竊見廟堂之計, 欲經理砲樓, 設營漢濱, 其意固善矣。 然臣聞之, 欲固京師者, 必壯其形勢, 內有藩垣之重, 外有屛翰之圖, 强兵重鎭, 峙列相望, 故國有盤石之安。 今內外之勢, 無一足恃, 而邊事疎虞, 蕩然無一藩屛之蔽, 而禁衛單弱, 砲、殺手不滿千人。 形勢如此, 何以爲國? 且念重恢大業, 須以克己感人爲先, 以修政任賢爲本。 愚慮所及, 請得一一條列, 以備採擇於萬一。 其一, 則敎諭方伯、守宰, 各率妻子, 入保山城。 此一款, 是今日急務。 明旨已下, 汲汲遵行, 庶可及事, 而備邊司不卽擧行, 臣竊惑焉。 請亟下明旨, 申飭諸道。 其一, 則監司、守宰, 務得人心, 推誠心置人腹, 懃懇曉諭, 明示利害, 令各提挈老幼, 擔齎糧資, 入保山城, 協力拒守。 以此開諭, 人豈不信? 其一, 則直路要害及關防重地, 則極擇文、武才略之人爲守令, 嚴設把守, 毋致疏虞。 其一, 則監司、守宰, 不遵上敎, 先爲逃竄之計, 動搖人心, 不從將令, 不入山(塞)〔寨〕 者, 皆斬首梟示, 以警人心。 壬辰之變, 所在犇潰, 雖緣民心之離散, 亦由軍(津)〔律〕 之不行。 今不可因循姑息, 自致潰敗, 須嚴明示諭, 三令五申, 然後一一依律施行。 其一, 則以諸將官、諸邑宰, 分爲衛將, 各守城寨, 形勢連絡, 自相應援。 賊向某處, 則某衛將領兵救之; 賊圍某寨, 則某衛將合兵救之, 其或違令, 卽斬以徇。 已上數條, 下書于都體察使, 亟爲施行。 竊聞體察使, 請遣元帥, 恐非所宜。 今日所患, 在於將多。 將多則令出多門, 諸將、列邑, 莫適所從, 所以敗也。 《易》曰: "長子帥師, 弟子輿尸, 凶。" 今旣有都體察使, 又有副使, 何必更遣元帥, 以犯輿尸之凶哉? 如欲別置大將, 總理戎務, 則如郭再祐、朴晋、裵楔, 皆可任也。 其一, 則感動人心, 須先約已。 臣願聖上, 毋忘龍灣之日; 群臣毋忘跋涉之時。 撤燕私之奉, 而以募驍壯; 省後庭之費, 以養爪牙, 則人情必感, 而軍勢自壯矣。 其一, 則騎射, 乃我國之長技, 而義勇兒童, 屢被賞賜, 善射武士, 未蒙恩典。 今宜另加招撫, 以勸長技。 唐 肅宗德業, 固無足稱, 惟其撫養戰士, 故張良姊免身數日, 起縫戰士衣裳曰: "此豈妾自養之日?" 可見肅宗用意之勤。 其所以能致克復, 豈偶然哉? 其一, 則冤獄之拂人心傷和氣, 無如己丑之甚。 其枉濫橫罹之人, 亟令大臣, 商議條啓, 伸雪枉冤, 則人心感悅, 天意可回矣。 其一, 則金誠一奉使日本, 抗節不屈, 雖以玄蘇之狡黠, 猶不敢不以尙節義爲言。 及其受任嶺南, 糾率義徒, 忼慨焦勞, 僵死軍事。 南人思之, 無不隕涕。 當時鄭仁弘、金沔、郭再祐之徒, 倡義討賊, 顯立功勳, 無非誠一主張成就之力。 今追贈之命, 獨及於沔, 而誠一則蓋闕焉, 誠聖世之欠典也。 誠一奉使, 不能審察形勢, 此其短也, 而實出無情, 何可深罪? 雖曰有罪, 豈可以一眚, 掩大節也? 其一, 則鄭仁弘、郭再祐, 忠義素著, 勳烈亦高。 仁弘可爲方伯, 再祐亦將才也。 再祐歸臥田廬, 不赴體察之召, 是不知人臣急病之義, 人或非之, 然亦朝廷任使之失宜。 伏願聖明, 詢問廟堂, 亟令大用。 宜引如再祐者, 招對便殿, 親賜玉音, 勉以忠義, 委以方面, 則可以得力。 其一, 則保合遺黎, 生聚敎訓, 最爲急務, 而兵火之餘, 生靈殆盡。 宜以恤民爲第一, 而治兵設險居其次。 昔, 衛爲狄所滅, 遺民不滿數千, 而文公大布之衣, 大帛之冠, 務材訓農, 通商惠工, 元年革車三十乘, 季年乃三百乘, 其秉心塞淵, 而騋牝三千。 夫以衛(叢)〔蕞〕 爾小國, 殘破之餘, 而完復之易及如此, 況我國, 壤地數千里, 生齒物力, 什倍於衛矣。 其一, 則 聖志旣立, 慷然以重恢自任, 則必能得賢相, 而委政仰成, 勤聽納, 而修政立事。 每日昧爽, 殿下罷朝, 移坐便殿, 承旨出入啓事, 不用中人傳旨, 而燕居日, 召經筵官、兩司, 論難經義, 數引大臣, 商確庶事, 君臣相戒, 共濟艱難; 朝修其禁令, 晝考其國政, 夕省其典刑, 夜警其百工; 日接賢士大夫, 存心於治亂之機, 毋或一日深居宮中, 則天心必佑, 國勢可振矣。 其一, 則治亂在庶官, 任官之道, 不可不愼。 古之明君, 多令公卿、近臣, 辟擧賢才, 或令自擧其僚, 未嘗獨委於銓部。 蓋以天下之人材無窮, 而銓官之耳目有限。 必須申明薦擧之法, 隨才任使, 各當其器, 則人才可得矣。 其一, 則用人拘於資格, 取才限以科目, 此固叔世之謬規。 況在衰亂之世, 人才有限, 又以科目資格拘之, 重可(漢)〔歎〕 息。 臣愚以爲, 擇剛明適用之士, 或以布衣, 入侍經幄, 或令勸課春宮, 足以輔益聖德, 聳動觀聽, 其於改紀之政, 裨益不細。 臣不勝繾綣懇望之至。


答曰: "陳疏之意, 可嘉。"


【史臣曰: "宇顒, 嶺南人也。 箚中首尾二十言, 無非撥亂之務, 而不能施, 吁可惜哉!"】


【태백산사고본】 44책 72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648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사법-재판(裁判)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 구휼(救恤)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이순신에게 뒤진거같은 도요토미 히데카츠

노량해전 때 경상남도 사람들이 친왜 부역한 것에 대한 사료